시편 106편 12-29절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적적인 방법으로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은 기쁨의 찬양을 불렀습니다(12절). 그런데 그들은 곧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잊어버렸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가 행하신 일을 곧 잊어버리며 그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내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13-14절). ‘그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했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내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다”고 했는데, 그들이 낸 욕심은 어떤 것일까요? 먹는 욕심입니다. 민수기 11장 4-6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먹을 것이 없는 광야에서 만나를 주셨으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도 그들은 고기 안 준다고 불평했고, 생선 안 준다고, 채소 안 준다고 불평했습니다. 불평의 원인은 ‘탐욕’이었습니다(민 11:4).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요구한 것을 주셨지만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15절).
영혼이 쇠약해지면 죄에 약한 사람이 됩니다. 몸이 허약해지면 면역력이 떨어져서 병에 잘 걸리는 것처럼 영혼이 쇠약해지면 영적인 면역력이 떨어져서 죄를 잘 짓게 됩니다. 영혼이 쇠약해진 이스라엘 백성이 지은 죄에 대해서는 16-29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들은 ‘질투’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들이 진영에서 모세와 여호와의 거룩한 자 아론을 질투하매”(16절). 그들은 금송아지 우상을 경배하는 죄를 지었습니다(19-20절). 그 죄를 지음으로 그들은 ‘구원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21-22절).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들이 그 기쁨의 땅을 멸시하며 그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그들의 장막에서 원망하며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아니하였도다”(24-25절). 그 죄로 인하여 그들은 ‘기쁨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벌을 받았습니다(26-27절). 그들은 이방 사람들과 어울려서 이방 사람들의 우상을 섬기는 죄를 지었습니다(28-29절).
이스라엘 백성이 이런 죄를 지은 이유는 그들의 ‘영혼이 쇠약’해졌기 때문입니다(15절). 영혼이 쇠약해진 이유는 ‘욕심’을 내었기 때문입니다(14절). 야고보서 1장 15절은 말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사람들이 짓는 대부분의 죄는 욕심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은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라고 말합니다. “탐심은 우상 숭배”라는 말은 탐심이 있으면 하나님을 제대로 섬길 수 없다는 말입니다(눅 16:13). 디모데전서 6장 6절은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경건하게 살기 위해서는 자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영혼이 잘되지 못한 상태에서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육신이 잘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혼이 잘되는 것입니다. 육신의 만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혼의 강건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