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8장 1-13절에는 선택의 기로에 선 사람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첫 번째로 살펴볼 사람은 예레미야 선지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것이냐 전하지 않을 것이냐의 기로에 선 사람입니다. 그가 하나님께 받아 전한 말씀은 갈대아 사람들에게 항복하면 살 것이고 항복하지 않으면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것이라는 것입니다(2-3절). 이 말씀 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당시 유다 사람들은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전했기 때문에 그는 깊은 구덩이에 던져져야 했습니다(6절).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20장 9절에서 예레미야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마음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두 번째로, 유다의 고관들은 예레미야가 전한 말을 들을 것인가 안 들을 것인가의 기로에 선 사람들입니다(1-2절). 그들은 예레미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예레미야의 말을 안 들었을 뿐 아니라 왕을 찾아가서 예레미야를 죽이라는 말까지 했습니다(4절). 그렇게 한 이유는 예레미야가 전한 말이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예레미야의 말이 사실이냐 아니냐보다 그들의 마음에 들고 안 들고가 더 중요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 그 말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잠 19:20).
세 번째로, 시드기야 왕은 예레미야를 죽일 것이냐 살릴 것이냐의 기로에 선 사람입니다. 그 기로에서 그는 고관들의 말을 듣고 예레미야를 죽이는 선택을 합니다(5절). 그는 유다의 마지막 왕으로 21살 때 왕이 되어 11년간 왕위에 있었습니다(왕하 24:18a). 그의 마지막은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아들들이 죽임 당하는 것을 봐야 했고 두 눈이 뽑혔고 사슬에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가야 했습니다(왕하 25:7). 그렇게 된 이유는 그가 예레미야의 말을 안 듣고 바벨론에게 저항했기 때문입니다(대하 36:12-13). 그는 이 사람이 이 말하면 이 말 듣고, 저 사람이 저 말하면 저 말 듣는 사람이었습니다(5, 9-10절). 우리도 어떤 상황에서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면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들어야 할 말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시 119:105, 113).
마지막 네 번째로, 왕궁 내시 에벳멜렉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구덩이에 던져졌다는 말을 듣고 예레미야를 살려야 할지 그대로 두어야 할지 기로에 선 사람입니다(7a절). 그는 예레미야를 살리는 선택을 합니다(8-9절). 예레미야는 에벳멜렉 때문에 죽지 않고 살 수 있었습니다(10-13절). 에벳멜렉이 위험을 무릅쓰고 예레미야를 살린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사람이요 참 선지자인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은 에벳멜렉에게 복을 주셨습니다(렘 39:15-18). 우리도 에벳멜렉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정의와 공의를 추구하고, 사람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복주십니다.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당신을 하나님께서 복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