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6장 2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냐.” 욥이 친구들에게 한 말입니다. 친구들은 욥이 죄를 지어 하나님께 벌을 받아 고통당한다고 생각하면서 욥을 정죄하고 공격했습니다. 그들이 한 말 중에는 옳은 말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말은 욥에게 고통이 될 뿐이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욥과는 관계없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욥이 왜 고통당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들의 생각으로 욥을 판단하고 정죄했기 때문입니다. 욥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욥에 대한 사랑이 부족했습니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없으면 옳은 말도 흉기가 될 수 있습니다. 나의 ‘옳은 말’이, 나의 입바른 소리가 누군가에게 아픔과 상처와 고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욥기 6장 29a절에서 욥은 친구들에게 “너희는 돌이켜 행악자가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행악자가 되지 말라’는 말의 원래 의미는 ‘불의가 없게 하라, 불의한 일을 하지 말라’입니다. 개역개정판 성경은 그것을 좀 강하게 번역해서 ‘행악자가 되지 말라’고 번역했습니다. 사람은 태도나 말로도 불의를 행할 수 있고 ‘행악자’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8장 6절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 것이 그만큼 나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주로 무엇으로 다른 사람을 실족시킵니까? 말로 실족시킵니다. 말로 상처를 주고 말로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신체로 하는 폭행만 폭행이 아니라 말로 하는 폭행도 대단히 나쁜 폭행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욥기 7장 3-5절에서 욥은 자기의 고통을 이렇게 토로했습니다. “내가 여러 달째 고통을 받으니 고달픈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 내가 누울 때면 말하기를 언제나 일어날까, 언제나 밤이 갈까 하며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구나 내 살에는 구더기와 흙덩이가 의복처럼 입혀졌고 내 피부는 굳어졌다가 터지는구나.”
욥은 ‘여러 달째’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욥이 하나님께 말을 합니다. “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영혼의 아픔 때문에 말하며 내 마음의 괴로움 때문에 불평하리이다”(욥 7:11). 이 말은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 1:22) 하는 말씀과 대조가 됩니다. 욥도 사람인지라 인내가 한계에 이른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욥이 다른 사람에게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께 직접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직접 불평하면 불평도 기도입니다. 기도로 힘든 마음을 토로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하나님도 이해해주십니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에 대해 불평하는 것은 죄입니다. 욥은 하나님께 이렇게 토로했습니다. “내가 바다 괴물이라도 됩니까? 내가 깊은 곳에 사는 괴물이라도 됩니까? 어찌하여 주께서는 나를 감시하십니까? 잠자리에라도 들면 편해지겠지, 깊이 잠이라도 들면 고통이 덜하겠지 하고 생각합니다만, 주께서는 악몽으로 나를 놀라게 하시고, 무서운 환상으로 저를 떨게 하십니다. 차라리 숨이라도 막혀 버리면 좋겠습니다. 뼈만 앙상하게 살아 있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욥 7:12-15, 표준새번역).
욥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이렇게 말했을까요. 이 말을 들은 하나님은 또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고통당할 때 우리도 욥처럼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쏟아놓읍시다. 고통당하는 분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