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4장 1-18절에는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복음 전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고니온과 루스드라는 오늘날 튀르키예의 서부지역에 있던 도시들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여행을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간 곳은 구브로인데, 구브로는 제주도보다 다섯 배 큰 섬으로 오늘날의 키프로스 공화국입니다. 구브로 다음으로 간 곳이 오늘날 튀르키예의 서부지역입니다.
바울은 주로 회당을 찾아다니며 전도했습니다. 구브로에서도(행 13:4-5a),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도(행 13:14), 이고니온에서도 그렇게 했습니다(1절). 회당에 가면 유대인들이 있고 구약성경을 아는 이방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가는 지역마다 거의 회당이 있었는데 유대인들이 그만큼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게 된 배경은 그들의 고난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나라가 계속 짓밟히다 보니 자기 나라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는 유대인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회당은 유대인들의 고난의 산물이지만 하나님은 회당을 복음의 전진 기지로 사용하셨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의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1절). 안 믿고 핍박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2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과 바나바는 위축되지 않고 계속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도 ‘표적과 기사’로 그들을 도와주셨습니다(3절). 표적과 기사를 보고도 안 믿는 사람은 여전히 안 믿었습니다. 돌로 치려고까지 했습니다(4-5절). 돌로 치려고 하니 바울과 바나바는 그 지역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지역으로 간 바울과 바나바는 그곳에서 또 복음을 전했습니다(6-7절). 핍박이 결국은 다른 지역에 가서 복음 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으로 흩어져서 복음을 전하게 된 것도 핍박 때문이었습니다(행 8:1b, 4). 이런 것을 생각하면 우리 삶에 찾아오는 고난이나 시련도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고, 고난은 축복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입니다(롬 8:28).
이고니온을 떠난 바울과 바나바는 루스드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는데, 거기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걷지 못하는 사람을 말 한 마디로 걷게 해준 일입니다(8-10절). 이런 것이 성경이 말하는 ‘병 고치는 은사’입니다. 오늘날에도 바울처럼 말 한 마디로 병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사도가 없기 때문입니다(고후 12:12). 바울은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 사람에게 있는 것을 보고 고쳐주었는데, ‘구원받을 만한 믿음’은 ‘고침 받을 만한 믿음’을 말합니다.
바울이 놀라운 기적을 베풀자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생각했습니다(11-13절). 바울과 바나바가 이단 교주가 되려고 했다면 얼마든지 될 수 있었지만 그들은 참 신이신 하나님을 소개해주었습니다(14-18절). 하나님을 소개하고 예수님을 소개했을 때 그들이 믿었을까요, 안 믿었을까요? 안 믿었습니다. 안 믿었을 뿐 아니라 바울을 돌로 쳐서 거의 죽게 만들었습니다(행 14:19). 기적을 본 사람들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기적을 보았으면 믿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아닙니다. 기적을 보는 것과 믿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오늘날에도 병을 고친다고 하면 사람들은 많이 모입니다. 그런데 많이 모인다고 구원의 역사가 많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의 역사는 복음이 전해질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롬 10:17). 그 일을 하는 우리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