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61장 1a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나’는 누구일까요? 메시야(구세주)입니다. 메시야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헬라어로는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나사렛의 한 회당에서 이 말씀을 찾아 읽으시고(눅 4:16-20)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다”(눅 4:21b)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이 글은 메시야에 대한 말씀인데 내가 바로 메시야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야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소식’은 ‘복음’(눅 4:18)이고, ‘가난한 자’는 ‘심령이 가난한 자’를 말합니다. 마태복음 5장 3절에서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마음이 낮은 자, 겸손한 자를 말합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대체로 마음도 가난하고 겸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61장 1a절 다음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사 61:1b). 이 말씀도 메시야가 하실 일에 대한 말씀입니다.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마태복음 5장 4절에서 예수님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애통’은 무엇에 대한 애통일까요? 죄에 대해 애통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는 바리새인과 세리가 성전에서 기도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눅 18:11-12). 세리는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했습니다(눅 18:13). 두 사람 중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돌아간 사람은 세리였습니다(눅 18:14a). 예수님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고 자신의 죄에 대해 애통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을 용서해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9장 11-1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고,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고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메시야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 죄인 아닌 사람은 없습니다(롬 3:10, 23). 죄인은 죄 값을 지불해야 하는데, 죄 값은 사망입니다(롬 5:12).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모든 사람의 죄 값을 대신 지불해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받아들이고 믿으면 죄 사함 받을 수 있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롬 6:23, 5:19).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요 사랑입니까!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 사함 받은 사실이 있습니까? 지금 죽어도 천국에 갈 확신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