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일’은 유대 종교력으로 7월 10일입니다(레 23:27a). 우리가 사용하는 그레고리력으로는 9월이나 10월에 해당됩니다. 1973년 10월 6일에 이집트와 아랍의 여러 나라가 이스라엘을 공격함으로 4차 중동전쟁이 일어났는데 그날이 ‘욤 키푸르(속죄일)’였기 때문에 4차 중동전쟁을 ‘욤 키푸르 전쟁’이라고도 합니다. 미국은 매년 5월 첫째 목요일을 '범국가적 기도의 날(National Day of Prayer)’로 지키는데 성경의 ‘속죄일’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속죄일을 어떻게 지키라고 했는지,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지 레위기 23장 27-28절을 통해 생각해보겠습니다.
1. 성회를 열라(27b절). 속죄일에는 일단 모여야 했습니다. 다른 절기 때도 마찬가지입니다(레 23:2, 3, 7-8, 21, 35-36). 모이라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각자 알아서 지키라고 하면 제대로 안 지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도 열심히 모여야 합니다(히 10:25). 코로나 때문에 모이지 못하고 각자 집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니까 예배가 잘 드려지던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배는 모여서 드릴 때 더 잘 드릴 수 있습니다.
2. 스스로 괴롭게 하라(27c절). 고행하라는 말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고 금식하면서 죄에 대해서 마음 아파하라는 말입니다. 유다 사람들이 죽게 되었을 때 모르드개는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통곡”했습니다(에 4:1). 그렇게 하는 것이 ‘스스로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죄를 회개할 때는 마음을 찢으며 통회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시 34:18, 51:17, 욜 2:12-13a). 베드로도 그렇게 회개했습니다(마 26:75).
3. 하나님께 화제를 드리라(27d절). ‘화제(火祭)’는 희생제물을 불로 태워서 드리는 제사 방법입니다. 다른 제사 방법으로는 거제(擧祭), 요제(搖祭), 전제(奠祭)가 있습니다. 다른 절기 때도 화제를 드리라고 했습니다(레 23:8, 13, 18, 25, 36). 절기 때마다 화제를 드리라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 나올 때는 빈손으로 나오면 안 되고 희생제물을 가지고 나와야 하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예배에는 희생이 따라야함을 가르쳐줍니다. 인도의 사상가 마하트마 간디는 ‘사회를 병들게 하는 7가지 사회악’ 중의 하나가 ‘희생 없는 예배’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잘 새겨들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일에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려면 시간도 내야하고, 교회까지 오는데 필요한 물질도 써야 하고, 교회에 와서는 헌금도 드려야 합니다. 이런 것이 다 희생입니다. 온라인예배의 가장 큰 문제는 희생 없이도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온라인예배라도 안 드리는 것보다는 낫지만 희생 없는 예배는 예배가 아님을 잊지 맙시다.
4. 이 날에는 어떤 일도 하지 말라(28절). 일을 하다보면 속죄일을 의미 있게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날에 대해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레 23:3, 7, 21, 25, 36). 우리에게는 주일이 중요합니다. 주일에는 일을 안 하고 예배만 드리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그렇다고 율법적으로 그렇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를 안다면 율법적으로 주일 지키는 사람들보다 더 잘 지켜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십일조 드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일조를 율법적으로 드리는 사람은 정확하게 십분의 일 드리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러나 은혜로 드리는 사람들은 그 이상을 드리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속죄일이 주는 교훈을 깊이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더 잘 예배하는 우리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