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마다 헌금하는 문화가 다릅니다. 우리 교회는 예배 중에 헌금을 하지만 어떤 교회는 들어오면서 헌금함에 헌금을 넣습니다. 우리 교회는 설교 후에 헌금을 하지만 어떤 교회는 설교 전에 헌금을 합니다. 우리 교회는 헌금하기 전에 집사님이 헌금을 위해 기도하지만 어떤 교회는 헌금 후에 목사님이 봉헌기도를 드립니다. 우리 교회는 누가 어떤 명목으로 헌금했는지 강단에서 읽지 않지만 어떤 교회는 목사님이 강단에서 헌금봉투를 보면서 읽어 줍니다. 우리 교회는 집사를 세울 때 얼마 헌금하라고 말하지 않지만 어떤 교회는 장로나 권사, 안수집사를 세울 때 장로는 얼마, 권사는 얼마, 안수집사는 얼마 헌금하라고 말해줍니다. 헌금하는 문화는 교회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느 것이 맞고 어느 것이 틀리다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하면 되고 저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할 수 없습니다.
민수기 7장 10-88절에는 이스라엘의 12지파 지도자들이 봉헌물 드린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말씀을 읽다보면 두 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하나는 12명의 지도자가 같은 내용의 봉헌물을 드렸는데 성경은 왜 같은 내용을 12번씩이나 반복해서 기록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12지파의 지도자들이 그 많은 봉헌물을 드리면서 시험에 들지는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드린 봉헌물은 오늘날의 가치로 몇천만 원, 많게는 1억 원이 넘을 수도 있습니다. 그 많은 봉헌물을 지도자 혼자 드렸는지 지파의 사람들과 함께 드렸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재정능력이 있는 지도자는 혼자 드렸을 것이고 재정 능력이 약한 지도자는 지파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드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명단은 민수기 1장과 2장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성막이 봉헌될 때도 드렸고(민 7:3), 성막을 건축할 때도 드렸습니다(출 35:29). 그 많은 봉헌물을 드리면서 불평하지는 않았을까요? 불평했다는 기록이 없는 것을 보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반대였을 것입니다. 자기 민족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했겠습니까. 자기들을 지도자로 세워주신 것을 생각해도 감사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세워주셨는데(민 1:1, 5-7),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그 사실을 생각하면 더 많을 것을 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신 것을 생각하면 우리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있습니다. 부족한데도 일꾼으로 세워주시고 사용해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께 드릴 때는 감사한 마음으로 후하게 드려야 합니다(고후 8:2, 9:7). 하나님을 위해 드릴 수 있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시험에 들 일이 아닙니다.
12사람이 드린 똑같은 내용의 봉헌물을 일일이 성경에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12사람이 다 귀한 일을 했고,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 다 드러내주시고 싶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어떤 분이 특별한 헌금을 하면 목사는 그것을 교회 앞에 말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교회에 유익이 된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수기 7장을 봐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부인이 드린 두 렙돈에 대해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눅 21:1-4). 성경은 한 어린 아이가 드린 도시락의 내용물까지도 기록하고 있습니다(요 6:9).
헌금과 관련해서 시험 드는 일 없기를 바라고, 기쁨으로 후하게 드리는 당신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