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5장에는 레위라는 세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세관에 앉아 있는 레위를 보고 예수님이 “나를 따라오라”고 했을 때,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27-28절).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레위가 그렇게 한 것을 보면 레위는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 레위는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와 같은 사람입니다. ‘레위가 마태’라는 직접적인 말은 성경에 없지만 예수님이 세리 레위를 부르신 내용과 세리 마태를 부르신 내용(마 9:9)이 같은 것을 보면 동일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레위가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가요?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른 이유와 동일한데,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기 때문입니다(눅 5:8, 11). 알았다 해도 직장을 포기하고 따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따른 것을 보면 레위나 베드로는 정말 믿음이 좋은 사람들입니다. 아는 것을 넘어서서 행동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세리를 제자로 부르신 예수님도 대단한 분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세리는 매국노처럼 여겨지던 사람입니다. 죄인의 대명사처럼 불리던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리를 제자로 두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세리를 제자로 부르신 것을 보면 예수님도 대단한 분입니다. 예수님이 세리 레위를 제자로 부르신 것은 예수님이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것이고, 세리 레위가 예수님을 따른 것은 세리 레위가 예수님에게 믿음을 보인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의 믿음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엡 2:8).
예수님의 제자가 된 레위는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열었습니다(29절). 잔치를 연 이유는 예수님이 너무 귀한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정말 귀한 분입니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분 중에 예수님보다 더 귀한 분은 없습니다. ‘죄인’들과 먹고 마시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비방했습니다(30절). 그때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31-32절). 바리새인들의 눈에는 세리가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눈에는 바리새인도 죄인이었습니다(마 23:25-28). 하나님의 눈에 죄인이 아닌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시 14:2-3).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사람들의 죗값을 대신 지불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받아들이면 죄 사함 받고 구원받습니다. 사람이 멸망하는 이유는 지은 죄가 많아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멸망하는 것입니다(요 16:9, 3:18). ‘회개’는 죄에서 돌이키는 것이고, 불신에서 믿음으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죄인’들과 어울린다고 비방했고, ‘금식’하지 않는다고 비방했습니다(33절). 그때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34-35절). ‘신랑’은 예수님을 의미하고, ‘신랑을 빼앗기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핵심은 상황에 맞게, 필요에 따라 금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금식을 위한 금식을 했고,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금식을 했습니다. 그런데 금식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금식을 할 때는 표 안 나게 해야 합니다(마 6:16-18). 예수님의 제자로서 바르게 살아가고,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