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장 1-16절에 기록되어 있는 비유의 내용입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에서 일할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이른 아침에 장터로 나가 일할 사람들을 찾아 한 데나리온씩 주기로 하고 일을 시켰습니다. 오전 9시에도 나가 사람들을 구해 일한만큼 주기로 하고 일을 시켰습니다. 낮 12시에도 그렇게 했고, 오후 3시에도 그렇게 했습니다. 오후 5시에 장터로 나가보니 그때도 일할 곳을 찾는 사람들이 있었고 주인은 그들에게도 일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제일 먼저, 오후 5시에 들어와 1시간 일한 사람들에게 주인은 한 데나리온씩 주었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이른 아침부터 일한 사람들에게 약속한 금액입니다. 제일 늦게 들어온 사람들이 한 데나리온씩 받는 것을 보고 먼저 들어온 사람들은 당연히 더 많이 받을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오후 3시, 낮 12시, 아침 9시, 심지어 이른 아침에 들어온 사람들에게도 한 데니리온을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먼저 들어와 일한 사람들이 불평을 합니다(10-12절). 불평하는 그들에게 주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13-14절).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 하시려고 했던 말씀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논리로 움직이지 않고 은혜로 움직인다’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논리는 일을 더 많이 한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일한 것과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은혜 베풀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주인이 은혜 베풀기 원했던 사람들은 오후 5시에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아무도 써주지 않는 사람들입니다(6-7절). 아무도 써주지 않으니 돈이 없고, 그렇다고 빈손으로 집에 갈 수도 없고, 다만 얼마라도 벌어야 집에 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딱한 사정을 알고 주인은 은혜를 베풀어준 것입니다.
절박한 상황의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 주위에도 많습니다. 리어카를 끌면서 폐지를 줍는 노인들, 병든 남편/아내의 병원비를 걱정하면서 병상을 지키는 사람들, 직장을 구하지 못해 알바로 하루하루 버티는 청년들, 부모가 없어서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된 소년소녀들…. 다 오후 5시 인생들입니다. 오후 5시 인생은 성경에도 많이 나옵니다. 남의 밭에서 이삭을 주워야 겨우 먹고살 수 있었던 룻,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자녀들과 전 재산을 잃고 병든 노숙자가 된 욥, 아들과 함께 마지막 음식을 해먹고 굶어죽으려 했던 사르밧의 과부,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 귀신들린 딸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왔던 가나안 여인, 자식이 없어서 슬픈 마음으로 살아야 했던 한나, 사랑 받는 아들에서 하루아침에 노예가 되어 버린 17살 소년 요셉….
그런데 말이지요.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우리도 다 ‘오후 5시 인생’이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우리는 죄로 인해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가련한 인생들이었습니다(엡 2:12).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구원의 은혜로 베풀어주셨습니다(엡 2:8).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의 논리로 대하셨다면, 즉 우리가 한 선행에 따라 우리를 대해주셨다면 우리는 결코 구원받을 없었을 것입니다. 은혜로 대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주의 일에 더 힘쓰는 사람들이 됩시다. 하나님은 의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더 많이 의지하고,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해서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