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시편 5편은 다윗이 기록한 시입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기록했는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로 인하여 고통당할 때 기록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4-6절을 보면 ‘오만한 자들’ ‘행악자’ ‘거짓말하는 자들’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에 대해 다윗이 말을 하는데 그런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이 지금 다윗의 주변에 있기 때문입니다. 9절에서는 “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라고 했는데, ‘그들’은 다윗을 해치려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사람들로 인해 고통당할 때 다윗은 두 가지를 했습니다. 첫째는 기도입니다.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1-2절). 다윗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진짜 왕이요 자신의 왕인 것을 알았기에 하나님을 ‘나의 왕’이라고 부르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왕도 되시는 것을 알고 계시지요? 입으로는 하나님을 왕이라고 고백하면서 실생활에서는 내가 왕인 그리스도인도 많이 있는데, 우리는 모든 면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왕 되심을 고백하면서 살아갑시다.
다윗은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8b절), “하나님이여 그들을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 많은 허물로 말미암아 그들을 쫓아내소서”(10a절)라는 기도도 했습니다. 또한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3절)라고 기도한 것을 보면 다윗은 주로 아침에 기도했습니다. 하루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기도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고 필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아침은 조용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예수님도 이른 아침에 기도하셨을 것입니다(막 1:35).
사람들로 인해 고통당할 때 다윗이 한 또 다른 일은 예배입니다.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7절). 그 당시에는 성전이 없었는데 어떻게 ‘성전을 향하여 예배’한다고 했을까요? 여기서 말하는 ‘성전’은 법궤가 모셔져 있는 천막, 아니면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지을 성전, 아니면 하늘(천국)에 있는 성전(시 11:4)입니다. 7절 앞부분에 있는 ‘주의 집’을 법궤가 있는 천막으로 이해하면 ‘성전’은 솔로몬이 지을 성전이나 하늘에 있는 성전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NASB 영어성경과 <히브리어∙헬라어 직역성경>은 ‘성전을 향하여’라는 말을 ‘성전에서’로 번역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앞에 있는 ‘주의 집’과 뒤에 있는 ‘성전’은 같은 장소 곧 법궤가 모셔져 있는 천막이 됩니다. 어느 번역이 옳은 것인지 잘 모르겠으나 7절의 핵심은 다윗이 하나님을 예배했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다윗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예배부터 안 나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대단히 잘못하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있으면 예배를 더 잘 드리는 것이 맞습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기특하게 보셔서 도와주실 것 아닙니까. 당장 도와주시지 않아도 예배를 통해 위로해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주실 것입니다. 욥은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욥 1:20-21). 그것이 욥의 위대한 점입니다.
시편 5편은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사랑하시고 지켜주시는지를 말씀하면서 끝이 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피하는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사람을 사랑하시고 지켜주십니다(11절).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의인’으로 봐주십니다(1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