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3장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한 교회입니다(계 3:15-16). 차가워야 할 콜라가 미지근하고, 뜨거워야 할 커피가 미지근하다면 얼마나 맛이 없겠습니까. 교회가 미지근하다는 말은 ‘열심’이 없는 교회라는 말입니다(계 3:19). 그런데 물질적으로는 풍족했습니다(계 3:17).
라오디게아 교회를 보면 한국교회를 보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많은 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를 닮았습니다. 우리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 교회와 한국교회의 10년 뒤, 20년 뒤, 30년 뒤를 생각하면 암울한 생각이 듭니다. 유럽의 교회들처럼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습니다. 그렇게 안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한계시록 3장 19b절이 답을 주고 있습니다.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열심을 내라”는 말을 저는 ‘적극적으로 신앙생활 하라’ ‘적극적으로 교회생활 하라’는 말로 해석합니다. 성도들 중에는 적극적으로 신앙생활 하고 적극적으로 교회생활 하는 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도 있습니다. 수로 보면 소극적으로 신앙생활하고 소극적으로 교회생활 하는 분이 더 많습니다. 주일에 교회 나오는 것 외에 특별히 하는 것이 없습니다. 헌신 좀 하라고 해도 안 합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 저는 ‘저분은 직장생활도 저렇게 할까, 직장에서 저렇게 하면 잘되기 어려울 텐데…’라는 생각을 합니다. 직장에서 잘되고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사람이 적극적이라야 합니다. 스티븐 코비 박사가 쓴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책을 보면 성공하는 사람들의 첫 번째 습관이 ‘주도적(proactive)’이라는 것입니다. ‘주도적’과 ‘적극적’이 같은 말은 아니지만 연관성이 있습니다.
성도가 잘되고 교회가 잘되려면 성도들이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을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 대부분이 적극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않겠습니다”(창 32:26)라고 했던 야곱, 85세의 나이에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내가 그들을 쫓아내겠습니다”(수 14:11-12)라고 했던 갈렙, 어린 나이에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과 싸워 이긴 다윗(삼상 17:26), 하나님의 부르심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라고 했던 이사야 선지자,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특별했던 엘리야 선지자(왕상 19:10, 14) 등이 다 적극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베드로와(마 14:28, 요 21:7) 바울도 적극적인 사람이었습니다(행 22:3, 빌 3:6, 고후 11:2).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은 사람들 중에 소극적인 사람도 있기는 합니다. 모세나(출 4:10, 13) 사울 왕 같은 사람(삼상 10:22-23)이 그 예입니다. 그들에게 소극적인 면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쓰신 이유는 좋은 면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적극적인 분이십니다. “여호와의 열심이 이루시리라”(사 9:7b, 37:32b) 하는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되려면 적극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그것입니다. 모이는 일에도 적극적이라야 하고(히 10:25), 전도하는 일에도 적극적이라야 합니다(막 16:15). 기도하는 일에도 적극적이어야 하고(마 7:7-9), 주님을 섬기는 일에도 적극적이어야 합니다(롬 12:11).
개인의 믿음뿐 아니라 우리 교회와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서 성도들은 믿음생활과 교회 일에 좀 더 적극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복 주실 것이고, 우리 교회와 한국교회에 미래가 있게 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