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예루’는 터, ‘살렘’은 평화라는 뜻으로 예루살렘은 ‘평화의 터’ ‘평화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예루살렘은 평화와 거리가 먼 도시입니다. 예루살렘을 의미하는 말로 ‘시온’이 있는데, 시온은 예루살렘이 세워진 산(790m)의 이름입니다.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정한 사람은 다윗 왕입니다(삼하 5:7).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여부스 족속을 몰아내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수 15:63). 역사적으로 예루살렘은 여러 번 멸망했습니다.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했고, 기원전 331년에 헬라 제국에 멸망했고, 서기 70년에 로마 제국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멸망해도 예루살렘은 다시 일어났고, 1948년 5월 14일에 예루살렘은 주권국가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멸망한지 2천 년이 되어 다시 살아나는 것은 기적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오래 전부터 예루살렘의 회복을 말해왔습니다. 이사야 62장도 그런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이사야 62장의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예루살렘의 구원과 영광을 위해 계속 외치고 기도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2절에서는 이방나라들이 예루살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고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불리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3절은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사랑과 귀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4절은 사람들이 다시는 예루살렘을 ‘버림받은 자’, ‘황무지’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황무지’를 새번역성경은 ‘버림받은 아내’로 번역했습니다. 예루살렘을 ‘헵시바’와 ‘쁄라’라고 부를 것이라고도 했는데 ‘헵시바’는 ‘나의 기쁨이 그녀에게 있다’, ‘뿔라’는 ‘결혼한 여자’라는 뜻입니다. “네 땅이 결혼한 여자처럼 될 것”이라는 말은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기뻐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사랑하고 기뻐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5절도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기뻐하실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라는 말이 이해하기 어려운데 ‘네 아들들’을 우리말성경은 ‘너를 지으신 분’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렇게 읽으면 이해가 됩니다. 6a절에서는 하나님께서 파수꾼들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을 잘 지키도록 하셨다는 말을 합니다. 파수꾼이 성을 잘 지킨다 해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데(시 127:1) 하나님께서 파수꾼들로 하여금 성을 잘 지키도록 하셨다니 이것은 예루살렘이 안전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6b-7절이 이해하기 조금 어려운데 6b-7절은 너희가 예루살렘을 위해 늘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8-9절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이방인들과 원수들로부터 보호해주실 것을 말하고, 10절은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돌아올 것을 말합니다. 11절은 메시야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다시 오실 것을 말합니다(계 19:14, 슥 14:4a). 마지막 12절은 사람들이 예루살렘과 그 거민을 ‘거룩한 백성’ ‘여호와께서 구속하신 자’ ‘찾은바 된 자’ ‘버림받지 아니한 성읍’이라고 부를 것을 말합니다.
이사야 62장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이루어질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예루살렘은 세계의 수도가 될 것입니다. ‘평화의 도시’가 될 것입니다(사 2:4, 11:6-8). 구원받은 우리도 그곳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 후에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계 21장). 예루살렘을 위해 지금 우리가 할 일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시 12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