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선지자는 요시야 왕 13년에 사역을 시작하여 유다가 멸망하는 날까지 사역을 했습니다(렘 1:1-3). 계산을 해보면 41년간 사역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결혼하지 말라고 하여 결혼도 하지 않았습니다(렘 16:1-2). 결혼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유다 땅에 임할 비극 때문이었습니다(렘 16:3-4). 유다의 멸망을 바라보면서 사역했기 때문에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예레미야 4장 19-31절은 예레미야가 유다의 멸망을 바라보면서 슬퍼하고 아파하는 내용입니다. “슬프고 아프다”(19a절)는 말을 어떤 성경은 “내 창자여, 내 창자여!”라고 번역했습니다. 창자가 끊어지는 것과 같은 고통을 그가 느낀 것입니다. 그가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의 ‘심령이’ ‘나팔 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었기 때문입니다(1b절).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 바벨론이 유다를 쳐들어올 때 울려 퍼질 나팔 소리와 전쟁의 경보(함성, 아우성)를 미리 듣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그의 심적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선지자는 유다가 탈취를 당하고 자신의 천막집이 파괴되는 것도 심령으로, 하나님의 계시로 보았습니다(20-21절). 이 세상에 비극이 많지만 전쟁의 비극만큼 큰 것도 없습니다. 역대상 2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범죄한 다윗을 벌하기 위해 세 가지 벌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세 가지 벌 중의 하나가 석 달 동안 적군에게 시달리는 것입니다. 다윗은 3일 동안 전염병에 걸려 고통당하는 벌을 선택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3년 동안 기근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기근도 무섭고 전염병도 무섭지만 정말 무서운 것이 전쟁입니다. 6.25전쟁을 경험한 분들은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잘 압니다. 월남전에 참전한 분들도 잘 압니다.
22절은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이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유다 사람들에게 전쟁의 비극과 멸망의 고통을 주신 이유는 두 가지 때문입니다. 첫째는 유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22a절). 지식적으로야 알았겠지만 경험적으로, 체험적으로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가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경험적으로 체험적으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는 유다 사람들이 악을 행했기 때문입니다(22b절). 유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은 안 행하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악만 행했습니다. 이 두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유다로 하여금 고통당하게 하셨고 멸망당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이 두 가지를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되 체험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리고 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유다를 멸망시키시지만 완전히 멸망시키지는 않을 것도 말씀하셨습니다(27절).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는 이유는 이스라엘에게 하신 약속 때문입니다(창 12:3, 삼하 7:16). 메시야에 대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은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다 사람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십니다. 돌아온 그들은 서기 70년에 다시 로마에 의해 멸망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회복되어서 주권국가로 당당히 이 땅위에 서있습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벌하시고, 약속에 대해서는 반드시 지키시는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