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3장 25-33절에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열두 사람이 모세와 백성에게 보고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똑 같은 땅을 정탐하고 돌아왔는데 보고하는 내용이 다릅니다. 열 사람은 그 땅은 좋은 땅이지만 우리는 그 땅을 정복할 수 없다고 보고했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은 좋은 땅이고 우리는 정복할 수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같은 땅을 보고 왔는데 보고하는 내용에 차이가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생각이 다르고 시각이 다르고 믿음의 분량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보고를 한 사람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도 보았지만 그 땅에 사는 큰 사람들과 그들의 견고한 성읍들을 더 크게 보았습니다(27-28절). 반면에 긍정적인 보고를 한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더 크게 보았습니다(민 14:9b). 그랬기 때문에 그들의 결론도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있을 때 무엇을 볼 것인가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문제만 계속 보면 문제는 점점 더 크게 보이고, 나 자신은 점점 더 작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있을 때는 문제를 보면 안 되고 문제를 넘어 문제의 해결자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큰 사람들과 견고한 성읍들만 본 열 사람의 눈에는 자신들이 ‘메뚜기’처럼 보였습니다(32b-33절). 반면, 하나님을 바라본 여호수아와 갈렙의 눈에는 그 큰 사람들이 그들의 ‘먹이’로 보였습니다(민 14:9a). 이런 차이가 어디서 왔습니까? 무엇을 보느냐,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서 왔습니다.
문제가 있을 때 문제만 보면 문제는 점점 더 크게 보이고 나는 점점 더 작게 보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문제는 작게 보이고, 하나님께는 내 문제가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됩니다. 소년 다윗이 거인 장수 골리앗을 때려눕힐 수 있었던 비결도 그것입니다. 사울 왕과 이스라엘 군인들은 그들 눈앞에 있는 골리앗만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골리앗은 점점 더 무서운 존재로 다가왔고 그들은 싸울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보고 골리앗을 보니 골리앗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골리앗을 가볍게 때려눕힐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문제를 만나면 문제만 보지 말고 문제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문제는 작아지고 문제는 더 이상 문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시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사람을 돕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문제만 보는 사람들은 자신을 합리적인 사람,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자기합리화를 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보고를 한 열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32a절)했는데 그렇게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기합리화 때문입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려고 했을 때 다윗의 형 엘리압이 다윗을 책망했는데(삼상 17:28), 그것도 엘리압의 자기합리화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자기합리화를 위해 믿음 있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책망하기까지 합니다. 그렇게 하면 자기위안은 될지 모르지만 일은 되지 않습니다. 일은 어떤 사람들이 해내는 줄 아십니까? 무모해보여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사람들이 해냅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믿음으로 도전하는 사람들이 해냅니다.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믿음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문제를 넘어서서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문제를 극복하는 당신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