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8장 1-12절에는 ‘토기장이의 비유’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토기장이의 비유’ 하면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님은 토기장이이고 사람은 진흙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원하시는 대로 사람을 빚어 사용하신다 하는 것입니다. 복음성가 중에도 “주는 토기장이 나는 진흙/ 날 빚으소서/ 기도하오니/ 항상 진실케/ 내 맘 바꾸사/ 하나님 닮게 하여주소서” 하는 찬송이 있습니다. 로마서 9장 21절에는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하는 말씀도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토기장이의 비유’ 하면 하나님은 사람을 마음대로 빚어 사용하실 수 있는 분이다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18장 1-12절 말씀을 잘 보면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말씀은 그것이 아닙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보니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그릇을 만들다가 그릇이 망가지니까 토기장이는 원래 만들려던 그릇을 안 만들고 다른 그릇을 만들었습니다(2-4절).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6절). 맞는 말씀이지요?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만 이해하면 토기장이의 비유를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닙니다. 토기장이 비유를 들려주신 진짜 이유는 이 말씀 다음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7-10절 말씀을 쉽게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어떤 나라(민족)를 멸하려고 마음먹었는데 그들이 회개하면 하나님은 뜻을 돌이켜 그들을 멸하지 아니할 것이고, 반대로 어떤 나라(민족)를 복 주시려고 마음먹었는데 그들이 악을 행하면 하나님은 복 주시려던 마음을 돌이킬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니느웨 성 사람들이 앞의 예에 해당되고(욘 3:4-5, 10), 이스라엘 사람들이 뒤의 예에 해답됩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이미 멸망했고, 남왕국 유다도 지금 위태위태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토기장이의 비유를 들려주셨고 7-10절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토기장이의 비유 핵심은, 하나님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세우신 뜻을 바꿀 수 있는 분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하신 말씀은 이것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세워 너희를 치려 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11절). 그런데 유다 사람들은 “이는 헛되니 우리는 우리의 계획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리라”(12절)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유다는 결국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세우신 뜻을 바꾸시는 분입니다. 로마서 9장에 있는 토기장이의 비유에서 하시려는 말씀도 그것입니다. (로마서 9장 21-23a절을 공동번역 성경으로 읽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토기장이의 비유를 잘못 이해해서 하나님은 사람을 마음대로 하시는 분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안 하시는데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속성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하신다면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악한 자를 악한 일에 쓰시고 의로운 자를 의로운 일에 쓰십니다(잠 16:4).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십니다(출 33:19b).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는 비결은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