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2편에는 예수님의 고난과 관련된 말씀이 많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1a절) 하는 말씀은 예수님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하신 말씀과 비슷합니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6-8절) 하는 말씀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사람들이 조롱하는 것을 생각나게 해줍니다(마 27:39-44).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16절) 하는 말씀은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의 손과 발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을 생각나게 해줍니다.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18절) 하는 말씀은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의 옷을 나눠 갖기 위해 제비 뽑은 것과 비슷합니다(마 27:35-36).
시편 22편은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천 년 전에 다윗이 기록한 글입니다. 천 년 전에 이런 글을 기록했다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다윗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장 30-3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다윗이 메시야의 부활에 대해 한 말(시 16:10)과 관련해서 베드로가 한 말인데, 베드로는 다윗을 “선지자”라고 했고, “미리 본 고로” 다윗이 메시야의 부활에 대해 기록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미리 보았다’는 말은 다윗의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했다는 말입니다. 다윗이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 생생하게 기록할 수 있었던 것도 다윗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벧후 1:21).
다윗이 예수님의 고통을 묘사하는 것처럼 말한 것은 사실은 자신의 고통을 토로한 것입니다(1-2절). 다윗이 어떤 고통 중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이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다윗이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연상시키는 말을 한 것은 상징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인 다윗은 상징적인 표현을 써서 자신의 고통을 나타냈지만 하나님은 그 표현들을 예수님에게 문자적으로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영감을 주어 그렇게 표현하게 하신 것입니다.
다윗은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3-5절). 다윗은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구원을 찬송했습니다. 이런 점이 다윗의 위대한 점입니다. 평안할 때는 누구라도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지만 고통 중에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고통 중에 부르는 찬송이 진짜 찬송입니다. 다윗은 고통에서 구원해달라는 기도도 했습니다(19-21a절).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구원해 주셨습니다(21b절).
고통에서 벗어난 다윗은 또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 내용은 22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22편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하면 기쁨으로 찬송하게 해주신다. 고통을 안 당해도 되는 예수님께서 우리 위해 기꺼이 고통당하셨을 때 하나님은 예수님을 높여주셨고 찬양의 대상이 되게 해주셨습니다(빌 2:9-11).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우리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