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편은 다윗이 고통 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 드린 찬양과 기도입니다. 다윗이 어떤 고통 중에 있었는지는 13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 다윗은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이방 나라의 왕들이라고 생각됩니다. 시편 9편에 ‘이방 나라들’이라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5, 15, 17, 19, 20절). 고통 중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도움도 청했지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1-2절을 영어성경으로 보면 ‘I will(~할 것입니다)’이 네 번 나옵니다. 네 번의 ‘I will’은 ‘나는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할 것입니다’ ‘나는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할 것입니다’ ‘나는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입니다’ ‘나는 지존하신 주의 이름을 찬송할 것입니다’입니다. 이런 결심을 우리도 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3-6절에서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다윗의 원수들을 물리쳐주신 일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지난날을 돌아봐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할 이유는 많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그 외에도 감사하고 찬양할 일은 너무나 많습니다.
7-8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왜 그렇게 공의롭지 못한 일이 많을까요? 착한 사람들이 고통당하고 악한 사람들이 득세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를 다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언젠가는 반드시 선악 간에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9-10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은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고 환난 때에 요새가 되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환난 때에 하나님께 피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하나님이 계신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11절에서 다윗은 두 가지를 권면합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백성 중에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백성’은 이 세상의 모든 백성을 말합니다. ‘백성’이 새번역성경에는 ‘만민’, 우리말성경에는 ‘온 세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두 가지 권면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두 가지를 다른 말로는 ‘예배’와 ‘전도’라고 합니다.
12절에서 다윗은 이런 말을 합니다. “무죄한 피를 갚으시는 분께서 그들을 잊지 아니하시고 불쌍한 이의 울부짖음을 모르는 체하지 않으신다”(공동번역). 세상에는 공의롭지 않게 보이는 일도 많지만 이 말씀이 착한 사람이 고통당하는 것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13절은 다윗이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내용입니다. 나의 고통을 보시고 나를 도와주시면 어떻게 하겠다고 했습니까?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고 주의 구원을 기뻐할 것'이라고 했습니다(14절). 그런데 다윗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1-6절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점이 다윗의 위대한 점입니다. 고통 중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렇게 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그렇게 했습니다(합 3:17-18). 믿음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가 이런 것입니다. 우리도 다윗과 하박국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됩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