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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모세가 되셔야 합니다(신 1:19-33)

이광배 | 2018.05.02 08:22 | 조회 510

  신명기 1:19-33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그 땅을 정찰한 정탐꾼들에 대한 모세의 회고입니다.

 

  가나안 정찰대는 주님이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이 그 분의 말씀대로 풍요롭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땅에는 네피림의 후손인 거인족 아낙 자손이 살고 있었습니다. 정찰대가 봤을 때, 이스라엘은 아낙 자손의 적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정찰을 끝내고 돌아온 이후에 사람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그 땅은 풍요롭지만, 우리는 그곳에 갈 수 없습니다. 그 곳은 이미 거대한 거인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강해 보였고, 우리는 그들을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땅은 이미 저 거인들의 것입니다!’

 

  정찰대의 보고를 받은 이스라엘은 절망에 빠집니다. 곧바로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했고,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말로 소리 지르기 시작합니다.

 

   ‘애굽으로 돌아갑시다! 저 거인들과 싸워봐야 승산이 없습니다. 이곳까지 와보니 알 것 같습니다. 우리는 애굽에 있는 것이 제일 행복합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옥토를 눈 앞에 두고 그들은 노예로 살면서 고통받았던 땅을 그리워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원망을 들은 하나님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 손에 꼽을 정도로 당신의 백성들에게 실망하시고 분노하십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화를 내셨는지는 제가 설명하는 것보다는 성경에 기록된 표현을 그대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민수기 14:11-12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이 날 만약에 모세의 간절한 호소가 없었다면, 성경에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다른 민족의 이야기가 기록되었을 수 있습니다.

 

  민수기와 신명기에 기록된 이스라엘 정탐꾼들과 관련된 기사에서 사람들이 관심 있게 보는 주제는 이스라엘의 반역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부터 가나안 입성 전까지 하나님 베푸신 기적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하고 체험한 세계 유일의 민족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낙 자손의 장대한 기골을 보고 자신들을 이끄는 절대자의 존재와 능력을 망각하고 맙니다.

 

  두려움에 휩싸인 그들은 자신들을 스스로 고립시켜버렸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인간의 악함과 연약함의 대명사가 되어버렸고, 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지를 증명하는 사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모세입니다. 모세는 두려움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르짖습니다. 신명기 1:29-30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할 거라고 외칩니다. 그는 두려움에 빠진 백성들에게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하고 그들이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강력한 근거를 제시합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의 호소는 통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날 그 장소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이 두려움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줬습니다.

 

  이제 이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의 모습을 잠시 생각해보길 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만나는 일상에는 두려움에 떠는 이스라엘 백성이 많을까요? 아니면, 두려움에 맞서는 모세가 많을까요?

 

  저는 이스라엘 백성을 두둔하지는 않지만, 저 또한 두려움을 만나면 모세가 되지 못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됩니다. 그리고 그게 더 인간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주님의 은혜로 주의 종으로 살고 있고, 주님의 은혜로 가정도 꾸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주어진 물질과 살아온 삶을 보면, 도무지 계산이 맞지 않는 풍족함도 누렸습니다. 주님께 받은 은혜를 세어보라면,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그 분이 저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앞에는 언제나 두려움이라는 아낙 자손들이 버티고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제 아이들이 정말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습니다. 지금 제게 주어지는 물질로는 하루에 딸기 한 팩을 지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20개월짜리 막내와 끊임없이 꼬꼬를 외치는 만 4세를 갓 넘긴 체중 27킬로그램의 첫 째의(제 아들을 볼 때마다 제가 아낙 자손이 아닐까 하는 상상도 자주 합니다.) 식비를 감당하는 것도 벅찹니다.

 

  거기에 공과금과 향후에 발생할 교육비까지 생각하면, 아무리 고심해도 답은 절대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 사소한 가정사를 넘어서 제 사역에도 두려움은 많습니다. 말씀을 준비할 때마다 두려움이 있습니다. 지금 내가 제대로 준비를 한 건가. 말씀을 끝내도 두려움이 있습니다. ! 이제 정말로 설교할 말이 없다!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여러분 삶에는 어떤 두려움이 있습니까? 그리고 두려움을 느끼실 때, 주님을 먼저 찾으십니까? 절망에 짓눌려 계십니까?

 

  사람이 두려움을 만나면, 절망에 빠지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지 비정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도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두려움을 만날 때, 속으로는 떨면서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정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날 보여줬던 모습에서 나를 봅니다.

 

  그런 저를 두려움에서 구해주는 것은 나에게 주님이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제 아내일 때도 있고, 동료일 때도 있습니다. 해맑게 웃고 있는 제 아이들일 때도 있습니다. 주님은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또는 담임목사님의 말씀을 통해서 동료들의 격려와 위로로 제가 두려움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스라엘 백성과 같지만 한 편으로는 다릅니다. 저는 두려움이 다가오면, 절망에 빠지더라도 그 안에 잠겨 있으려 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오래 머무르는 것은 주님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고, 현실적으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 또한 두려움 앞에 떨고 있는 다른 누군가를 돕기도 합니다. 제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주변이 보이지 않듯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누군가를 보면, 그 사람의 시야가 점점 작아지는 것을 봅니다.

 

  그럴 때, 그런 분들에게 저는 잠깐이지만 모세가 됩니다. 누군가 모세가 되어 저를 절망에서 인도할 때처럼 저도 누군가의 모세가 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이 주신 시간과 공간 속에서 우리는 언제라도 두려움의 먹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모세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두려움 앞에 놓여서 스스로를 잊어버린 그 날 그들에게 부르짖었던 모세가 되어야 합니다.

 

  삶의 대해에서 흔들리고 지친 나머지 주님 앞에서 고개만 푹 숙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들라고 외쳤던 모세의 간절함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모세입니다!

 

여러분! 오늘 하루 모세가 되십시오! 많은 모세가 필요한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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